2016년 9월14일 수요일 맑음

 

하회마을(주차2,000원 입장료 3,000원)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자라난 곳으로 유명하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마을이름을 하회라고 한것은 낙동강이 "S" 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하회마을에서 부용대가는 통통배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을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들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으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 와 선비들의 풍류놀이

였던 선유줄불놀이 가 현재까지도 전송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마을에는 국보2점(징비록,하회탈,병산탈),보물4점등 22점의 문화재가 있고 충효당내

영모각에는 서애 선생의 유물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1999년 4월 가장 한국적인 고장을 찾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2010년7월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 되었다.

 

 

 

 

부용대 전망대에 가는방법은 2가지인데 하회마을에서 통통배(3,000원) 주고 타고 가는

방법과 하회마을 나가서 차로 부용대 전망대 가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하회마을에서 통통배타고 갔다.

통통배는 사람이 몇명이 모이면 태워서 부용대앞에 내려주고 부용대를 보고 나와서

내려준곳에 서있으면 다시 하회마을로 태워준다.

올해는 비가 많이 안와서 강물이 조금 밖에 없어서 금방 갈수 있었다.

 

 

 

 

화천서원은 겸암 류운룡선생의 학덕을 흠모 하던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위폐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정조 10년에 건립되었다.

 

 

 

 

 

 

겸암정사는 겸암 류운룡 선생이 1567년에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

겸암정이라는 현판은 그의 스승 퇴계 이황이 직접 써준으로

겸암이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바깥채의 누마루에 앉으면 절벽아래로 흐르는 깊은 소와 강건너 보이는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윽한 정위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벼슬길을 멀리하고 자연속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고자 했던 겸암의 면모을 그대로 느낄수 있는 곳이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1588년에 지은 정사이다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뒤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을 쓴

장소로도 그 의미가 깊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옥연이라고 하였다.

 

 

옥연정사는 한옥 숙박할수 있는곳이기도 하다

이날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가볼수가 없었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으로 평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별세한후 그의 문하생과 지역 사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류원지를 도와 건립하였다.

충효당 이라는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원지정사는 서애 류성룡선생이 부친상을 당하여 낙향한후 1576년에 서재로

쓰려고 지은 것이다.

2층 누각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함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수 있다.

원지는 서쪽의 원지산에서 나는 약초로서 마음을 다스려 정신을

맑게하는 효능이 있어 선생이 즐겨 드시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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